'이덕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2.21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강남미)
posted by oss 2009. 12. 21. 10:54

몇 해 전 가을 햇살 환한 어느 날, 옛사람이 쓴 글을 보다가 반가운 마음이 든 적이 있습니다. 스물한 살 난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1761년에 쓴 <간서치전>(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이라는, 짧은 자서전이었습니다.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던 그는 늘 자신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합니다. 누가 깨우쳐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읽었기에,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러다 문득 뜻을 깨칭게 되면 혼자 바보처럼 웃기도 했답니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몰두했던 실학이란 말에서,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떨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고 돌아와 봐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던 조선 백성들의 사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젊은 그들의 새로운 학문은 비롯되었으니까요. 그들 역시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 왔기에, 그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을 원했느느지 모릅니다. 이들을 알고부터 나는 실학이란 말을 대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

저자소개

안소영

안소영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서강대학교 문과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민족 분단의 고통을 겪어온 이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였다. 저서로는 부친 수학자 안재구 교수의 어린시절부터 주옥받은 옥중 편지를 묶은 서간집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 가 있다. 강남미 (그림)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77년 이래 여러 전시 출품 및 두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오랫동안 서울예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엘리트2000 제공]

목차

머리말
이야기 시작/ 1792년 12월 20일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책만 읽는 바보
햇살과 책과 나/ 나는 책만 보는 바보/ 가난한 달, 나만의 독서법/ 한서를 이불삼고 논어를 병풍 삼아/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서 술을...

두 번째 이야기/ 백탑 아래서 벗들과
내가 있을 자리/ 내 마음속의 백탑/ 백탑아래 맺은 인연/ 벗들이 지어준 나의 공부방/ 어찌 눈으로만 책을/ 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세 번째 이야기/ 내 마음의 벗들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나의 벗 박제가
오랑캐 무리의 괴수?/ 봄날, 시냇물처럼 다가온 벗/ 녹색 눈동자에 담신 외로움/ 운명, 나라고 마음대로 하지 못할까/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운종가, 구름처러 흘러 다니며

해부루를 노래하다- 나의 벗 유득공
사근사근 상추쌈 소리/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애지 중지 글상자, 진귀한 보물상자/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옛 도읍지를 찾아서/ 해부루를 기억하며/ 발장단 치며 노래를 부르며

칼칼한 바람속을 누비다- 나의 벗 백동수
북쪽 하늘 흙먼지 냄새/ 나의 벗, 나의 처남 백동수/ 스승을 찾아서/ 나무꾼과 어부의 집/ 무예의 길과 평화의 길은 하나/ 기린협으로/ 벗을 보내며

우리를 벗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벗 이서구
책을 만나러 온 어린 벗/ 문턱이 닳고 책장도 닳고/ 한 점 그늘 없는 벗/ 우리를 벗이라 할 수 있을까/ 그대 위해 빈 배 남겨 두리

네 번째 이야기-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
나에게도 스승이 계신다면/ 지금, 그리고 이곳의 학문/ 달 밝은 밤, 수표교위의 작은 음악회

이 세상의 중심은 나- 담헌 홍대용 선생
나와 벗들을 사로잡은 책/ 스승의 따뜻한 미소/ 공처럼 둥근 지구/ 이 세상의 중심은 나/ 한여름 날 천둥소리, 거문고 소리

선입견을 버려라- 연암 박지원 선생
조선의 다듬이 소리/ 연암선생과 박제가/ 이른 봄제비처럼, 듬직한 바위처럼/ 선입견을 버려라/ 기와조각과 똥거름이 가장 볼 만 하더라

다섯 번째 이야기- 마침내 세상속으로
마흔을 눈앞에 두고

드넓은 대륙에 발을 내 딛다
1778년 3월 17일, 홍제원에서/ 넓은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다/ 유리창, 세상 모든 책이 여기에/ 연경거리에서/ 늦도록 불켜진 방/ 반가운 벗의 얼굴/ 옛 고구려와 발해 땅을 찾아서/ 가슴에는 대륙을

백탑을 떠나 대궐로
네 글 읽는 소리가 듣기 좋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해는 저무는데 갈길이 멀구나/ 잊혀진 날, 발해의 역사를 되살리다/ 하루 말미를 주신다면/ 돌아온 벗/ 이론과 실제에 충실한 무예 책/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다/ 백성의 마음으로

여섯 번째 이야기-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미래는
아버님의 칠순 잔칫날/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서로 나무녀 이어지는 시간/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하늘

이야기 끝- 1793년 1월 24일

뒷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인물과 책
참고한 책

[인터파크 제공]

##################################################

21p.
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뼌가량, 두께는 엄지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책과 책을 펼처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ㅉ므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 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즐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부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하엿다.

75p.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무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가슴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욱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박제가와 나처럼, 우리와 다른 벗들처럼.

76p.
'붉다'는 그 한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 있으니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박제가

163p.
제자리를 찾지 못한 소리는 듣기 싫은 잡음에 불과하다.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자연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도무지 그 이치를 알 수 없을 때는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갑작스럽거나 두렵게만 느껴질 것이다. 하늘의 해를 가리는 일식과 갑자기 달이 사라지는 월식에,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엎드려 벌벌 떨고 두려워하였던가. 그러나 해와 달이 저마다의 길을 따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돌아가는 법칙을 알게 되면, 자연은 너무나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