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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7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김점선)
posted by oss 2007. 3. 17. 03:30

가봤어? 사람이 위대한 점은 가보지 않고도 안다는 것이다.
직접체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훌륭한 점이다.
그런데 바보들은 늘 그렇게 질문한다. 직접체험 여부를 묻는다.
그것도 꼭 말하는 중간 허리를 자르고 끼여들면서 묻는다.
'가봤어?' 내가 태어나서 제일 많이 만난 바보의 종류가 바로 이런 류들이다.
'먹어봤어?', '해봤어?' 어찌 지식의 체험을 직접체험에만 의존하는가?
그들은 구석기 시대의 사고와 의식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화가 김점선은 황금의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야생마이다.
이런 미친 말이 우리의 삶을 짓밟고 다니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광란하라, 점과 선이여, 우리의 곁에서 마음껏 춤추라.
- 최인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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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 연습을 하는 중에 간간이 컴퓨터의 다른 기능을 탐색하고 놀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속에 다양한 색채와 공감이 무한점 숨어 있는 걸 알아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아들이 주말마다 와서 나의 수업 과정을 체크했다. 어느 날 아들이 소리쳤다.
"우와, 이것이 화가구나! 화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아니, 이런 간단한 도구로 이런 그림을 그려내다니!"


매혹은 전부다.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의 전부다. 스티븐슨, 보르헤스가 말하고 수많은 관찰자들이 말하고 엿 같은 세상을 안 엿같게 만드는 게 예술가다라고 말하면 나를 돌로 치겠지. 어차피 죽을 거 돌로 맞아 죽을 만큼 질투와 증오를 받으면서 죽는 것도 염병 걸려 홀로 죽어가는 것보다야 좋다.
집을 지을 때 구조와 재료에 골몰하여 튼튼하고 편리한 집을 지었따면 그 집은 백 년도 못 돼서 헐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집이 아주 매혹적으로 지어졌다면 수백 년이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집을 보존하려고 난리를 피우고, 그리하여 대대손손 보호되어 감상된다. 그렇게 매혹은 힘인 것이다.


가깝게 지내던 대가들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들은 죽으면서 말한다.
딱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림만 그리다 죽고 싶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죽어갔다. 나는 너무 슬펐다. 내가 그들이 되어 안타까워하면서 슬펐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그림 그리고 싶어 울면서 죽는 자신을 생각하면 그림 안 그리고 대낮에 숲속을 산책하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많이 알려고 하지 말고 자유 상상하라. 우언가를 알아내려고 작가나 남에게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즐기고 막 상상하라.


나는 여행하기보다 멈추기를 즐긴다.
나는 멈춘다. 책 읽으려고. 걸으면서 읽을 수는 없다.
나는 멈춘다. 음악 들으려고, 더 잘 들으려고, 더 깊이 들으려고...
나는 멈춘다. 말하기를, 음식물 씹기를, 걷기를...
그리고 눈을 감는다. 더 잘 들으려고, 더 잘 음미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왜 그리스로, 로마로, 마추픽추로 가서 그 무너진 집들 주변을 그렇게 맨도는 걸까? 완성하고 나면 깨부숴야 한다. 이건 본능이다.


'자뻑'은 예술가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자기 스스로 뻑 가야 한다. 스스로에게 매혹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지금 어머니를 사랑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 용량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뵈는게 없다. 나체고, 성기고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집중에서는, 그 소년이 더 나아가 국가과 민족, 문화와 예술, 인류와 우주를 그렇게 사랑하리라. 그렇게 순수하게. 지금처럼 눈물이 앞을 가려 감동의 눈물이...


그래도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 거창한 일은 내 평생 결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므로, 누가 날더러 중국을 침공할까 말까를, 대마도를 정벌할까 말까를 묻기라도 할 기색이 안 보이므로. 그래서 더욱더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


오늘 목욕 중에 개달아 물 속에서 울다. 누구든 완전히 옳게만 살면 아마도 젊은 나이에 처형당하겠지. 인간들이 쳐죽이지 그냥 놔두진 않겠지. 꼭 그럴까? 꼭 그렇기만 할까?

가책을 심하게 느끼면서 정확하지 못한 이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 내가 사흘을 늦게 심은 사실은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는구나. 사람들은 누구도 모르는구나.
고독하고 허무하고... 미리 닥쳐올 인생의 엉성함에 막연한 슬픔을 느꼈다.


이런 사람이 좋다. 자기 일에 미쳐있는 사람, 남의 눈 의식 하지 않는 사람, 자뻑하는 사람.
내가 만약 일년 뒤에 죽는 다면 오늘부터 어떤 일을 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