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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7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조선희)
posted by oss 2007. 3. 17. 03:25

씨네21 편집장 5년,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


조선희는 작가다. 십여 년 전 그가 발표한 소설 한 편을 읽은 이래, 그가 맹렬 문학담당 기자로 활약할 때나 영화판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씨네21> 편집장으로 있을 때도, 나는 그를 늘 '작가 조선희'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 언론계에서 아무나 쟁취할 수 없는 그 빛나는 이력을 팽개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라는 해병대식 계율은 모든 창조의 열망과 재능을 타고난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저주의 신탁인 것이다.
내게 한 가지 걱정은 있다. 작가의 사람이란 저 세속의 밀림에 대한 공포와 열등감을 이지기 못한 자가 거주하는 동굴의 어둠 같은 것인데, 이곳에 거처하기엔 그가 바깥에서 너무 잘나가는 야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안광을 빛내던 하이에나의 시절에도 얼마나 사처투성이의 물러터진 내면을 싸안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성공의 잔을 마시던 순간에도 그는 실패와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어둡고 긴 실패의 길을 떠나려는 그를 축복하고 싶다. 벌써부터 잘 곰삭은 상처의 향내가 날 취하게 한다. -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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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시네 21, 성공모델 만들기
1. 박수 받을 때 떠나라
2. 씨네21 창간, 높은 산은 깊은 계곡을 갖고 있다.
3. 잡지 만들기. 시장이라는 콜로세움 속의 검투사
4. 영화잡지 편집장, 즐거운 기억들 괴로운 기억들
5. 풋내기 시절, 그 낯설고 불안한 첫발
6. 성공이란 뭐지?

2부. 일하는 여자, 그 뒷모습
7. 결혼이라는 흥미진진한 모험
8. 어머니, 나, 딸
9. 폭격 맞은 집안살림, 슈퍼우먼은 없다.
10. 신문사에서 여자가 부장 되기 국장 되기
11. 90년대 신문사에서, 그리고 우리 세대의 꿈

3부. 영화계에서 보낸 한철
12. 내 인생의 영화, 슬퍼서 아름다움 영화들
13. 영화비평, 끝없는 시비
14. 멋진 남자, 영화제작자 이태원
15. 이륙하는 스타들, 영화감독
16. 영화의 시대에 대한 애증

4부. 씨네21 편집장이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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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작업을 생가갛면 나는 늘 E.H.카가 이야기한 '역사의 일회성' 문제를 떠올린다. 역사에서 모든 일은 한 번 일어나면 완벽하게 똑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프랑스 혁명 직후 로베스 피에르의 혁명독재와 길로틴의 등장을 미리 예견했다면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회성의 믿음 때문에, 그런 정치적 반등을 겪고도 역사는 또다시 혁명을 꿈꾸에 되는 것이다. 역사도, 개인사도 그 일회성에 의해 구제받는다.


나는 인생에서 그 어떤 ㅇ일도 안 일어나느것보다 일어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을 잃는 그럼 것만 아니라면.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것이다. 그늘에서 나오면 양지가 한결 따뜻하고, 슬픔의 맛을 아는 만큼 즐어움의 결도 풍성해지는 것이다.


인생에선, 떠난 자리로 되돌아오는 일은 없다. 악마의 산을 넘었다면 튼튼한 전사의 몸이 되어 삶의 또 다른 언덕에 서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림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벽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겨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으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욕망은 삶을 추진하는 연료다. 그런 게 없다면 사는 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질 것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한 시기를 깡그리 연소하는 건,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목표가 못 돼먹은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어떤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난 뒤의 기분은, 달콤한 숙면 뒤에 개운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켤 때와 같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에 던져졌으면, 더럽고 복잡해도 거기거 시시덕거리며 사는 게 답이다 싶다. 그리고 도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열리는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란, 인생에 걸쳐 하루하루의 일상을 한게 할 룸메이트를 정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끊임업이 이어질 혈육의 족보를 공동제작하는 일이다. 이처럼 운명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중요도에 걸맞는 이성과 분별력으로, 필생의 사업계획을 작성하는 자세로, 그 모든 요소들을 연구검토해야 옳을 것 같다. 하지만 나만 그런지 모두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남자에게 끌리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모두 아주 비이성적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이런 얘길 했었더. 노인이 옹기르 ㄹ지게에 메고 가다가 옹기가 떨어졌는데 그대로 가더라는 거야. 지나가던 사람이 놀라서 불러 세우니까 벌써 깨졌는데 돌아보면 뭐 하겠냐 하더라는 거야."


생후 1주일, 말ㄹ 비틀어진 핏덩이의 탯줄이 슬그머니 툭 하고 떨어져나간 자리에 꼴을 드러낸 배꼽을 보고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아하, 이 무용지물에 대해 난 단 한 번도 무엇의 흔적인지 생각해 본 일이 없었구나. 갑자기 내 배꼽에 언젠가 붙어 있던 탯줄, 그 탯줄을 타고 흘러 들어오던 어머니의 몸이 느껴졌다. 어디까지 거스러올라가는 것일까, 이 생명의 끈들은?


'침묵은 악덕이며 표현이 미덕이다.'
'인내는 악덕이며 반항이 미덕이다.'
'겸손은 악덕이며 당당함이 미덕이다.'
'양보는 악덕이며 쟁취가 미덕이다.'
'자기희생은 악덕이며 자아실현이 미덕이다.'


그래서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좋다. 우리의 딸들을 위해서, 그 같은 애니메이터가 있다는 게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의 지르비 스튜디오는 약간 공산주의적인 협업 시스템이어서 그가 프로듀서, 각색 등에 참여한 것들까지 합하면 작품 리스트는 꽤 길다. 하지만 그가 직접 원작, 각본, 감독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만든 몇 편의 작품들은 정말 좋다. <바람의계곡 나우시카>에서 <이웃의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그리고 <붉은 돼지>까지.


자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남자도 가장 게으른 여자보다 더 게으라드는 게 내 지론이다. 적어도 집안에서는.


만일 신문사 공채 수습 10명 가운데 여자가 한 명이라면 이 한 명은 감수성이나 지능이나 사회성에서 그 '잠재력'이 나머지 남자들보다 우월할 가능성이 90%다. 그들은 입사 시험에서 일정한 커트라인을 넘어 비슷한 점수를 얻었겠지만, 분명 잠재적인 재능은 그 가운데 낀 한 명의 여자가 훨씬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가 100미터 달리기를 해서 이 지점까지 왔다면, 여자는 그 100미터를 장애물 넘기 해서 같은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은>을 1988년에 읽었다. 참 매력적인 문건이었다. 그리고 심금을 울렸던 마지막 문장. "프롤레타리아가 혁명 속에서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은 것은 세계 전체이다. 전세계의 플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91년 5월, 마오쩌뚱의 처 강청이 목매 자살했다는 뉴스가 국내 신문의 해외토픽난에 조그많게 실렸다. "주석, 당신의 학생으로서 전우는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그의 유서 한 토막은 흡사 ''혁명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묘비명과 같았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닮아 노랗게 불타는 꽃이지만, 한때 전장이었고 지금은 위령탑이 서 있는 산등성이에서 바람에 물결치는 해바라기 벌판은 그 무심함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을 자아낸다.


일어버린 사랑, <해바라기>(1970)
죽음 앞의 절망, <블레이드 러너>(1982)
이념의 그늘, <허공에의 질주>(1988)
해방을 꾸는 꿈, <정복자 펠레>(1988)
세일즈맨의 죽음, <글레게리 글렌로스>(1992)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 <서편제>(1983)
절대적인 슬픔 그 이후,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모든 데뷔작이란, 자신이 작가가 된 이유를 담고 있으며, 청년기에 내연해 온 정신적 열병의 흔적이며, 이제껏 농축시켜온 에너지의 일회적 폭발 같은 것이다.


재능은 테스트해 봐야 안다. 하지만 재능을 예비해 두지 않앗땀녀 테스트해 봐야 무슨소용이 있을까.


창작이란 지식인 최고의 정신적 사치이자 욕망인 건 아닐까. 그래서 중국 문화혁명가에 20년에 걸친 집필금지 연출금지는 작가들에겐 정신적 사형선고였을 것이고, 40년대 유럽 파시즘과 50년대 미국 매카시즘은 많은 자국의 작가들을 타국에서 유랑하게 했을 것이다. 테마는 마음속에서 사과처럼 익어가는 것이라는 이마르 베리만의 말처럼, 인생의 창고에서 온갖 것들이 쌓여 천천히 발효하면서 팽창하는 뜨거운 공기를 어떻게 가둬둘 수 있겠는가.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천재였고 대중을 유혹하는 전략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극악한 성장기를 통과한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의 신데렐라로 입신한 뒤에도 정신분열과 알코올 중독과 섹스 집착증과 노출증, 지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아주 불운하고 복잡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백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누구나 못돼먹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 대게 치명적인 위험은 모두가 옳다고 믿는 어떤 것에서 나오기 십상이다.


나는 첸카이거의 수기 <나의 홍위병 시절-어느 영화감독의 청춘>(91년, 푸른산)을 읽고서 마음이 너무 쓰라려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


마르크스 사위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에서 자본주의가 "담배를 피우며 태양 아래서 한가하게 빈둥대는 행복한 나라를 찾아서 기차 선로를 놓고 공장을 세워 저주받을 노동을 수출한다"고 썼다.


그건 홍상수 영화에 박중훈을 쓰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일이다. 어떤 광고의 카피를 슬쩍 빌려 말하자면, 배우는 스타보다 아름답다.


마지막 순간에 웃기 위해 웃음을 참는다거나 하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며, 미뤄온 웃음을 한꺼번에 웃는 마지막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뭐 그런 생각을 어느날 갑자기 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어떤 경우든, 표절시비의 표적이 되는 것은, 한국 영화이지 미국영화나 일본영화는 아니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른바 포스트식민주의시대에 저들은 문화생산국이자 문화종주국이고 우리는 문화소비국이자 문화식민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중은, 그리고 우리의 작가들은 매양 저들의 영화들을 보고 살지만, 저들은 우리 영화를 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해 알게된 사람. 조선희. 일하는 여성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