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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4 7막 7장 그리고 그 후 -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홍정욱)
posted by oss 2008. 8. 4. 06:41

삶이 흐른다.
멈추지 않고 차란히 흘러내란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아, 나의 젊음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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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저자 | 홍정욱
는 2002년 12월 ㈜헤럴드미디어를 인수,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으며 국내 최초의 대중경제문화지 <헤럴드경제>와 국내 최대의 종합영어신문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으로서 지식정보기업 창출에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구정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에 입학하였으며 축구부 주장과 학교신문사 편집장, 그리고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미국 NBC방송의 최연소 수습기자로 활약했으며 조기 특차전형으로 입학한 하버드대학에서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고 3학년 때에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편입학하는 등 다양한 대학생활을 경험했다.

졸업 당시에는 논문 <신기능주의적 관계 : 한 중 외교 데탕트, 1978~1992>로 최우수 사회과학 논문상과 숨마 쿰 라우디, 그리고 토머스 ?스 상을 수상하였고 1993년 9월 말 중국 북경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북아 정세에 관해 공부했으며 199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증권감독위원회 변호사를 거쳐 1998년 8월 다국적 투자금융기업인 리만브라더스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근무했다. 이어 스트럭시콘이라는 벤처회사를 창업, CFO(Chief Financial Official, 재무담당이사)로서 경험을 쌓았다. 아내, 딸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2008년 제18대 총선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었다.
목차

추천사 가장 푸른 지성의 아가미
책머리에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1막1장 내 운명의 주인으로
incipit
유학을 결심하다
케네디의 모교
수도원의 여름
미국의 귀족과 꿈의 하버드
케네디의 뒤를 좇아서

1막2장 초우트, 그리고 어머니
Prep School
Thousand Eyes
공부, 공부 또 공부
표절 파라노이아
뉴욕에서의 달콤한 주말
Veni, Vidi, Vici
뜻하지 않는 키스

1막3장 자아와의 타협
Social Butterfly
금지된 것들의 유혹
Amicus Ad Aras
건강한 젊음
영어에서 처음을 받은 A학점
어머니

1막4장 젊은 삶, 젊은 초상
NBC 수습기자로서 만난 한국
Welcome to Harvard!
교지 편집장과 기숙사 사감
삶의 1막을 내리며

2막1장 꺼져가는 불빛에 맛서
L'etranger
지성과의 만남
내 방황의 끝은 어디?
한국으로의 도피
아방가르드에 무릎 꿇다
삶을 지켜가는 용기
내 향해의 목적을 찾아

2막2장 생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쉬며
정치학과 '89학번
The Sorak Daily
삶을 채워준 친구들
Ars Amandi
씻은 듯이 새벽이 오다

2막3장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다시 돌아온 하버드
잠에서 깨어나는 사자
졸업 논문

2막4장 지성인의 반열에 서서
졸업
아버지
미국이라는 나라
세계의 시민으로
Ad Infinitum

그후 검증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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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넓은 바다에 살아도 가자미의 바다는 웅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29p.
'운명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 J. Bryan)의 말대로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만족에 들떠 있었다.

46p.
지브란(K. Gibran)은 <예언자>에서 부모는 자식을 쏘아올리는 활이라고 표현했다. 어머니는 이미 그때 어느 누구보다 높은 과녁을 향해 강인한 활로 나를 쏘아올리셨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나의 행로를 지켜봐주셨다.

131p.
'세상에 유일한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라는 마사그레이엄(M. Graham)의 명언을 적은 종이를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자신간에 차 있던 나는 하버드 합격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196p.
나는 진보해야 했다. 브라우닝(E. Browning)의 표현처럼 신의 것도, 야수의 것도 아닌 오직 인간의 의무인 '진보'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대학 3학년 2학기 말, 나는 목적지에 휘날리는 깃발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했고 초조했다. 나에게는 배우면서 행할, 뛰면서 생각할 의무가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모든 변혁과 진보에는 그 시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228p.
천성적인 문과 체질인 나는 논술을 즐겼고, 논리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원칙 또한 가지고 있었다. 첫째, 논술은 반드시 명확한 주제를 가져야 하며, 그 주제가 끈질기게 유지되어 서론과 결론이 큰 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둘째, 논술의 스타일은 칼로 자르듯 명쾌하고 정확해야 하며, 은유와 직유 등 문학적 기법은 최소화해야 했다. 셋째, 자료의 인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나, 정보의 서술적인 나열을 절대 피해야 했다. 넷째, 어렵고 지루한 일이지만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대 이론을 모두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논술의 결론은 본론의 요약에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미래 연구의 방향 및 과제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결국 논술은 끊임없는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기술인 동시에, 주관적 견해와 객관적 근거를 융화하여 합리적인 논리를 이끌어내는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241p.
그러나 이 같은 좌절에서 오는 방황은 대부분 자기 성찰과 진로 모색의 방향으로 전환되게 마련이다. 즉 이들은 '최고'라는 천편일율적인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무모함을 버리고, 개인적인 관심사와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 신축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분야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양 얕고 편협적인 지식을 쌓으니, 실제로 전문 분야를 찾아 그 분야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인자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다.

244p.
에리히 프롬(E. Fromm)은 교육의 목적을 '젊은이로 하여금 그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현재의 노력과 성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그 학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보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일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더 발전시키고, 수많은 '수재'와 '천재'들이 도중하차하는 불행을 막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72p.
재즈(jazz)만큼 감성의 출구를 다양하게 마련해 놓은 예술의 장르는 드물다. 랙타임(Ragtime), 블루스(Blues)에서 퓨전(fusion)에 이르기까지, 재즈는 인간과 악기의 구분을 최소화하여 가장 솔직하고 깊은 틀 속에서 인간의 감성을 엮어낸다. 나는 그런 재즈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 빌리 할리데이,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웨스 몽고메리, 토니뇨 오르타 등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언어를 통해 내 감정을 규정해 줬다. 나는 오랜 사색의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했으며,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반드시 몇 장의 CD를 지참하고 다녔다. 재즈는 오페라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였다.

274p.
결론적으로 나는 전문적인 지삭과 경험을 습득해야 했다. 학자로서 이론에 충실하거나, 예술가로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지 않는 한, 나는 더욱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춰야만 했다. 법을 알아야 했고, 숫자를 알아야 했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개발해야 했으며,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이가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상과 능력의 격차를 최소화해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상을 낮출 필요는 없었다. 단지 나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을 뿐이다.

281p.
나는 아직까지도 '행복한 삶'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설정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점들이 많다.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해 나아감에 있어서 행복은 성취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굳이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진취적이지 못하고, 약하고, 이기적이고, 작은 삶의 모습으로 생각이 되는 건 아직 내가 철이 덜 들어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