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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1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posted by oss 2011. 9. 11. 01:37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다시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 공지영이 딸 위녕과 세상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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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p.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 릴케

29p.
그리고 지금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너와 너의 행위, 엄마와 엄마의 행위를 분리해야 한다는 거야. 이건 아주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란다. 엄마가 나무라는 것은 '너의 게으름'이지 '게으른 너'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비난에 상처 입는 것은 대개는 이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진정한 충고인지 비난인지는 사실 말을 하는 사람이 이 둘을 잘 구별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35p.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심은 남들이 나의 취향, 나의 자존심, 나의 이득, 나의 기쁨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부인은 내가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나를 사랑하고 나는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겠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 둘이 생겨나겠지만, 사랑 만세!
-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 부인에게 안소니 신부가

59p.
얘기가 좀 빗나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런 나이든 남자들을 좋아해. 겨울 밤에 늦도록 불 켜놓고 책을 보다가 잠깐 졸고 있는 나이 든 남자. 그때 노란 스탠드 불빛 아리 언뜻언뜻 한 그의 흰 머리는 화려한 꽃다발 속에 섞인 보리 이삭처럼 싱그럽거든. 그리고 또, 수수한 셔츠 안으로 색이 아주 화려한 실크 스카프를 살짝 나오게 매는 나이 든 남자, 또 서울 교대 앞, 거기 곱창집 골목 말이야. 거기 지나가다가 가끔 본 건데,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커다란 서류가방을 낀 채로 -그 곱창 집에는 서류가방을 놓을 자리가 별로 없거든- 또래의 늙수그레한 노년의 친구와 소주를 마시면서 열띤 토론을 하는 그런 나이 든 남자. 그 또래의 남자들은 젊은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에 앉아 흐리고 음탕한 눈으로 술을 마실 나이도 되었고, 오랜만에 일찍 집에 돌아와서는 커다란 소리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대체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 건지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화면을 바꾸다가 어느 순간 가는 코를 골며 졸기도 쉬울 텐데 말이야.

70p.
그래,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냉소적인 것, 소위 쿨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글을 쓸 때에도 어쩌면 그게 더 쉽고, 뭐랄까 문학적으로 더 멋있게 꾸미기도 좋아.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더욱 황당한 것은 상처는 후회도 해보고 반항도 해보고 나면 그 후에 무언가를 극복도 해볼 수 있지만 후회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cool) 하다 못해 서늘(chill) 해져버린다는 거지.

80p.
삶은 우리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아. 내가 아니라 말이야. 그러니 네 꿈조차도 규정 속에 집어넣고 못질해버려서는 안되는 거야. 네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꿈을 꾸는 것과 그것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차단하는 것과는 다른거야. 네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는 것과 네가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거지. 꿈이 네 속에 있어야지 네가 그 꿈속으로 빠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오스카 와일드도 그걸 통찰해내고 있다.

108p.
에픽테토스는 그래서 거기서 자신과 상대방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그것을 극복한 다음, 말하지. 단언한단다.
인간은 자유를 원할 때에만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낼 때에만 우리에게 상처 입힐 수 있다. 불행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믿음, 선입견... 즉 표상이다.

137p.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성 프란치스코

178p.
네 목표가 연애를 잘 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유용하겠지만 네 꿈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말했짆아.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 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지.

179p.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러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맏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