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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7 세상은 우리가 사랑한 만큼 아름답다 (박범신)
posted by oss 2007. 3. 17. 03:22

황야와 같은 각박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달려가지만 그 질주 뒤에 소외는 깊고, 박탈감은 끓어오르며, 불안은 날카롭게 전염된다.
오늘 우리가 만드는 세상의 자화상이다.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가? 바쁘게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에 눌려 있는 본질적인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무의식 속의 그가 바로 본질적인 우리 자신이다.
충만한 삶은 자신의 본성이 그리워 하는 길로 나아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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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라야가 내게 가르쳐 준 것
느린 삶의 평화
병실의 사계
절벽으로의 질주
마흔 삶의 자화상
'거차'에서 꾸는 꿈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은
사랑이 있는 한 전절은 계속된다
은수저에 담긴 행복
마음의 가난
호야나무 아래서
눈에만 아름다운 사기
불운에 익사하지 않기
내 작은 행복의 이유들
당신은 어느 대학 학생입니까?
내 마음 속의 큰 강
십 년 후의 십 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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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지만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 '부탁합니다' '또 만납시다' 등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종에 관계 없이, 계층에 상관 없이, 성별 노소에 구분 없이 산에서 만나면 누구나 친구가 되고, 친구가 되어 나누는 말은 나마스테가 기본이다.


말은 많은 생각과 사랑의 경계를 짐지운다. 산은 다만 오를 뿐이지 빨리빨리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히말라야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새끼 사자처럼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우리의 본성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나'.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나'. 그 순수한 비어 있음. 그 경계가 없는 무. 그 텅 빈 충만.


욕망의 끈을 놓는 순간,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 끈을 놓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가. 그래도 마음 어디엔가 욕망의 찌꺼기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 문득 그것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내가 가엽다. 하지만 나를 믿는다. 다시는 그 냄새 나는 더러운 찌꺼기들 속에 갇혀 살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욕망은 불순하지만 욕망이 있음으로써 인간은 인간이다. 다만 그 욕망에 끌려 가지 않으면 된다.


그와 반대로 돈을 조금도 쓸 줄 모르는 부자들도 나는 여럿 만났다. 그들의 재산은 남겨진 생애 동안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써도 굉장히 많이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웃을 위해 내놓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그 재산으로 사후에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길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귀엔 어려운 사람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가진 것 없느 ㄴ이에게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 주려는 마음. 추워서 떨고 잇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 곁에서 모닥불이 되어 주려는 마음. 배고파 울고 있는 이게게 따듯한 국밥을 나눠 줄수 있는 마음. 그럼 마음은 실상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더없이 부자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고귀한 마음이다. 그것이야말로 물질은 풍요하나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선 결코 찾을 수 없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오늘 아침 하늘이 저토록이나 말게 비어있는 것은 그 뜻을 나에게 되새기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닐는지.


돈 많은 사람은 늘어나도 여유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똑똑한 사람은 늘어나도 기가 맑은 사람, 살아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든 건 인가닝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에게서 제일 거북한 존재가 되어 버렸는지도.


어차피 가난이 본전인 집안 출신이었다. 잘살려고 하니까 문제이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근심이 차츰 사라졌다. 사건이 있으면 돈이 생기고 맡은 일이 없으면 시간을 번다고 마음 먹었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지폐 한 장보다 감동의 책 한 장이 훨씬 귀하게 다가왔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숫자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나도 읽은 책마다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읽어야 한다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루소의 <참회록>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같은 좋은 책들을 골라 하나하나 정독해 갔다. 통장의 금액을 나타내는 숫자가 자랑이듯, 나는 읽은 책의 숫자를 최고로 올리고 싶었다.


나는 일본의 신학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글에서 읽은 이 구절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다.
"반드시 대저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작은 저술로도 족하다. 내가 본 진리를 간단명료한 글자로 엮어 이를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반드시 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작은 일로 충분하다. 반드시 완전할 필요는 없다. 분완전해도 좋다. 나는 날마도 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환난과 고통 많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다. 큰일만 하련느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완전만을 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만다. 진실로 위대한 일면은 작은 일에 바지런한 것이다.


"나는 날마다 스스로에게 두 가지 주문을 겁니다. 첫째, 오늘은 웬지 행운이 있을 거야! 둘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